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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건으로 본 조선일보 100년] [46] 시대를 기록한 특종 사진들

1961년 6월 10일 열린 군법회의 언도 공판에서 죄수복을 입고 고개 숙인 엄마의 손을 어린아이가 붙잡고 있다. 본지 사진기자 정범태가 찍은 사진이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날 쿠데타 군부의 이른바 ‘혁명재판소’에 선 시민 39명 중 이 여인 한 명만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1961년 6월 10일 열린 군법회의 언도 공판에서 죄수복을 입고 고개 숙인 엄마의 손을 어린아이가 붙잡고 있다. 본지 사진기자 정범태가 찍은 사진이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날 쿠데타 군부의 이른바 ‘혁명재판소’에 선 시민 39명 중 이 여인 한 명만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1961년 6월 10일 서울·경기 고등군법회의 언도 공판이 열린 경기도청 회의실. 창문으로 오후 햇살이 비쳐 들었다. 죄수복을 입고 고개 숙인 여자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군재(軍裁)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려는 순간 ‘자박자박’ 발자국 소리가 났다. 두세 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아장걸음으로 방청석에서 나와 여자의 손을 꼭 잡더니, 판사석을 바라봤다. 현장을 찍은 본지 사진기자 정범태는 훗날 “아이는 말 없이도 ‘우리 엄마를 살려주세요’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듯했다”고 회고했다. 군사정부가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며 시민들을 이른바 ‘혁명재판소’ 법정에 세우던 시절이었다. 정범태는 이 사진에 사진가 카르티에-브레송의 용어를 빌려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해 말 일본 아사히 국제사진전에서 ’10대 걸작’으로 선정됐다.파워볼대중소

보도 사진의 힘은 때로 신문 지면의 영향력을 넘어선다. 가슴을 치는 휴머니즘이, 참혹한 한 시대의 민낯이 사진 안에 기적처럼 오롯이 자리 잡는다. 휘발돼 사라질 뻔한 순간을 붙잡아 지면에 담은 것은, 목숨을 걸고 현장으로 달려갔던 사진기자들의 투지와 끈기였다.

시위에 나섰다가 소위 ‘정치 깡패’들의 습격을 받아 한밤의 서울 거리에 처참히 쓰러진 고려대생들의 모습을 보도한 1960년 4월 19일 자 본지 사회면. /조선일보DB
시위에 나섰다가 소위 ‘정치 깡패’들의 습격을 받아 한밤의 서울 거리에 처참히 쓰러진 고려대생들의 모습을 보도한 1960년 4월 19일 자 본지 사회면. /조선일보DB

한 해 전인 1960년 4월 19일 아침, 본지 조간 사회면에 실린 특종 사진은 타오르던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정치 깡패들에게 무참히 폭행당해 피 흘리며 쓰러진 고려대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전날 저녁,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마친 고대생들이 쇠갈고리와 쇠파이프 등을 든 깡패들의 습격을 받았다. 순식간에 학생 40여명과 기자 6명이 쓰러졌다. 본지 사진기자 정범태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각도를 잡고 셔터를 눌렀다. 미리 봐둔 골목길로 정신없이 뛰는 그의 뒤에서 깡패들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어떤 놈이 사진 찍었어!” 정범태는 “그 한 장의 사진이 4·19 의거의 불을 붙이는 작은 불씨가 되었다고 감히 자부하고 있다”고 회고했다. 정범태는 1960년 1월 설날 전야 서울역에서 31명이 죽고 41명이 다친 사상 최악의 압사 사고도 특종 보도했다.

1960년 1월 26일 설날 전야, 서울역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압사 사건 현장을 보여주는 1월 27일 자 조선일보 사회면 사진들. /조선일보DB
1960년 1월 26일 설날 전야, 서울역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압사 사건 현장을 보여주는 1월 27일 자 조선일보 사회면 사진들. /조선일보DB

1970년에는 본지 사진기자 전창우가 일본항공 여객기 ‘요도호(號)’를 납치한 적군파 테러범이 부기장의 목에 일본도를 대며 위협하는 사진을 보도했다. 납치범들은 당초 평양행을 요구했으나 일단 김포공항에 내렸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기자 200여 명이 현장 부근에 진을 쳤다. 전창우는 공수부대 참모의 도움으로 군복으로 갈아입고 현장에 접근했다. 비행기 머리가 보이는 포탄 야적장에 숨은 채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 조종석 창가에서 부기장의 목숨을 위협하는 범인을 목격했다. 망원렌즈로 재빨리 두 장을 찍은 그는 필름을 꺼내 양말 속에 넣었다. 전창우는 “활주로를 빠져나오다 헌병대에 체포됐지만, 카메라 속 빈 필름을 꺼내 발로 뭉개 보이는 허세를 부리며 촬영한 필름을 지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일본 극좌파 테러 조직 적군파 조직원이 조종석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납치한 일본항공 여객기 부기장의 목에 일본도를 들이대며 위협하는 모습. 1970년 4월 3일 자 본지 1면 사진이다. /조선일보DB
일본 극좌파 테러 조직 적군파 조직원이 조종석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납치한 일본항공 여객기 부기장의 목에 일본도를 들이대며 위협하는 모습. 1970년 4월 3일 자 본지 1면 사진이다. /조선일보DB

1974년 8월 15일 아침, 광복절 기념식 행사 중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전국이 충격에 휩싸였다. 단상 위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괴한 한 명이 객석 뒤쪽에서 권총을 쏜 것이다. 대부분 사진기자들이 그 날 예정됐던 지하철 1호선 개통식으로 빠져나간 뒤였지만, 행사장에 남아 있던 본지 사진기자 임희순은 무대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단상 위 내빈들은 보이지 않았고, 대통령 부인 육영수만이 의자에 앉은 채 목을 뒤로 떨궜다. 잠시 후 ‘연설을 계속하겠습니다’는 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격범 문세광은 5발을 쐈고, 그중 한 발이 육영수 여사의 머리에 맞았다. 임희순의 특종 사진은 육 여사의 영결식이 끝난 뒤인 8월 21일 자 조선일보에 실렸다.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 도중 육영수 여사가 피격당하자, 대통령 경호실 수행계장 박상범이 권총을 들고 박 대통령이 숨어 있는 연단을 호위하고 있다. 총격을 당한 육영수 여사의 모습도 보인다. 본지 사진부 임희순 기자의 특종 사진. /조선일보DB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 도중 육영수 여사가 피격당하자, 대통령 경호실 수행계장 박상범이 권총을 들고 박 대통령이 숨어 있는 연단을 호위하고 있다. 총격을 당한 육영수 여사의 모습도 보인다. 본지 사진부 임희순 기자의 특종 사진. /조선일보DB
지난 2012년 11월 5일 ‘정치개혁과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는 교수선언 기자회견’에서 참석 교수들이 문재인과 안철수 두 야권 후보에게 단일화를 촉구하고 있다. 맨 왼쪽이 조성대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 뉴스1
지난 2012년 11월 5일 ‘정치개혁과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는 교수선언 기자회견’에서 참석 교수들이 문재인과 안철수 두 야권 후보에게 단일화를 촉구하고 있다. 맨 왼쪽이 조성대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 뉴스1

22일 인사청문회를 앞둔 조성대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에 대해 국민의힘은 조 후보자의 과거 여권 편향적 언행을 문제삼으며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홀짝게임

최형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21일 논평에서 “정권 편드는 선관위원에게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대통령 선거를 다 맡길 것인가”라며 “정권과 여당의 청부 선관위원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다 하다 선관위원까지 코드인사”라며 “헌법과 민주주의를 모독하지 말고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조 후보자는 선거법 전문가”라며 “이념편향성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 등에 따르면 조 후보자는 작년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당시 한 언론 기고문에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고, 하나의 위선이 또 다른 위선을 공격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 사태가 몹시 언짢다”며 조 전 장관 측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같은 해 다른 기고문에는 “보수의 오늘은 오히려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극우 행동주의에 더욱 기대는 모양새”라고 표현했다.

또 2018년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서는 “(드루킹은) 악의로 접근한 선거 브로커였다”며 여권 연루 인사들을 감싸는 발언을 했다.

조 후보자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며 트위터에 “후보단일화를 통한 정권교체가 시대정신입니다”는 글을 수차례 올렸다.

참여연대 출신인 그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시 박원순 후보가 나경원 후보를 앞섰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10월 17일 트위터에 “원순씨가 서울시를 들어올리겠는데요. 다 함께 기뻐하기 일보 직전. 대한민국 국민은 위대합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라고 적어 올리기도 했다.

조 후보자는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선 정부의 발표를 부정했다. 그는 2010년 6월 3일 트위터에 “진실은 이제 밝혀져야 하지 않나? 북한이 스텔스 잠수함 및 잠수정, 물고기와 사람은 안 다치게 하고 초계함(천안함)만 두 동강 내며 초계함 밑의 파편을 물고기들이 다 뜯어 먹는 그런 친환경 어뢰를 개발했다는 개그 앞에 진실은?”이라고 했다.

조 후보자는 2012년 1월 트위터모임 ‘이인영과 영파워’에 가입하는 등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의 친분을 드러냈다. 트위터에서 “친한 선배 이인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선관위는 불법 선거운동 단속과 조사, 선거법에 대한 유권해석 등을 실행하기 때문에 공정한 잣대가 중요한 기관이다. 임기 5년 장관급 직위의 선관위원들로 채워진다. 정치 편향적 인사들로 채워질 경우 공정 선거 자체가 의심될 가능성이 크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부모 허락받은 아이들, 나체 어른에 질문
“자기 몸 긍정주의 격려 위한 교육 도구”
“아이들에게 너무 이르다”는 비판도

덴마크의 어린이 프로그램 '울트라 스트립스 다운(Ultra Strips Down)'에서 온몸에 문신을 한 자원봉사자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 유튜브 화면 캡쳐]
덴마크의 어린이 프로그램 ‘울트라 스트립스 다운(Ultra Strips Down)’에서 온몸에 문신을 한 자원봉사자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 유튜브 화면 캡쳐]

“당신의 중요 부위에 만족하나요?”

나체의 어른들에게 방청석의 한 어린이가 손을 들고 질문한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다른 어린이들도 기다렸다는 듯 번쩍 손을 든다. 뉴욕타임스(NYT)가 18일(현지시간) 다룬 덴마크의 인기 어린이 프로그램 ‘울트라 스트립스 다운(Ultra Strips Down)’ 얘기다.파워볼사이트

2019년 첫 방송 이후 시즌2를 맞이한 어린이 프로그램 울트라 스트립스 다운은 매회 다른 5명의 어른을 나체로 무대에 세운다. 방청객의 어린이들로부터 질문을 받기 위해서다. 11~13세 사이의 어린이들로만 구성된 방청객은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언제부터 몸에 털이 나기 시작했나요?”, “문신을 지우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프로그램 관계자는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를 격려하기 위한 교육적 도구로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자기 몸 긍정주의란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의미다. 2017년부터 전 세계 여성을 중심으로 캠페인이 확산돼 패션업계에서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이 활약하는 계기가 됐다.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기획자인 야니크 쇼우(29)는 “몸에 대한 불만족스러움이나 완벽하지 않다고 느끼는 감정 등은 SNS에서 온다”고 말했다. 우리가 SNS에서 보는 90%의 몸은 완벽하지만, 실제 사람들의 90%는 그런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는 “사람들은 살이 쪄있기도 하고, 털이 나 있기도 하다. 심지어 뾰루지가 있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이런 건 다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방송은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인 만큼 엄격하게 규칙을 지킨다. 부모의 허락을 받은 아이들만이 방청객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아이들과 나체의 어른들을 같은 카메라 앵글에 담지 않는다. 불편함을 느끼는 어린이가 있다면 무대 뒤편에 마련된 공간에서 선생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 또 매주 무대에 서는 어른들은 배우가 아닌 자원봉사자들이다.

무대에 오른 76세의 한 자원봉사자는 “여기 있는 우리는 평범한 몸을 가졌다”며 “여러분이 평범한 몸은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이해하길 바란다”고 방청객을 향해 말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덴마크 극우 성향의 ‘덴마크 인민당’ 의원 피터 스코룹은 “해당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너무 이르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천박한 방식이 아닌, 학교 혹은 부모님들로부터 아이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덴마크의 어린이 프로그램 '울트라 스트립스 다운(Ultra Strips Down)'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어린이들로부터 질문을 받기 위해 가운을 벗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 유튜브 화면 캡쳐]
덴마크의 어린이 프로그램 ‘울트라 스트립스 다운(Ultra Strips Down)’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어린이들로부터 질문을 받기 위해 가운을 벗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 유튜브 화면 캡쳐]

그럼에도 울트라 스트립스 다운은 덴마크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2019년도에는 덴마크 TV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어린이 프로그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쇼우는 “몇몇 사람들은 ‘노출과 아이들을 묶었어’라며 놀랄지도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성관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저 아이들이 하는 것처럼, 몸을 자연스럽게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덴마크에서 두 권의 육아 관련 베스트셀러를 펴낸 소피 뮌스터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덴마크 부모들은 대체로 아이들을 어떤 것으로부터 방어하기보다 노출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 벗은 어른들을 노출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은 덴마크식 방식 중에서도 극단적일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몸에 대한 아이들의 불안함을 달래는 덴마크만의 방식은 나체에 아이들을 더 노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

한라산 성판악 등산로 1700m 고지 주변에 구상나무가 집단으로 고사한 모습. 조현우 사진작가
한라산 성판악 등산로 1700m 고지 주변에 구상나무가 집단으로 고사한 모습. 조현우 사진작가

제주 한라산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구상나무 숲이 있다. 크리스마스트리로도 유명한 구상나무.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이 나무가 한라산에서 죽어가고 있다. 기후변화가 가져온 재앙이다.

중앙일보는 창간 55주년을 맞아 현실로 다가온 기후변화의 현장을 취재한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를 제작했다. 지면뿐 아니라 VR(가상현실) 영상 등을 통해 제주도, 시베리아 숲, 그린란드 빙하, 호수 산호초 지대 등의 생생한 현장과 현지인들의 증언을 담았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한라산 구상나무의 모습을 VR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영상이 보이지 않으면 주소창에(https://youtu.be/t7rik8DE9pk)를 입력하세요.

한라산 백록담 물이 만수를 기록한 모습. 구상나무 군락도 함께 보인다. 김진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연구원
한라산 백록담 물이 만수를 기록한 모습. 구상나무 군락도 함께 보인다. 김진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연구원

취재팀은 기후변화가 한라산 구상나무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고자 지난달 14일 성판악 등산로를 올랐다. 성판악 정상부는 구상나무가 가장 널리 분포한 곳이다.

이날 제주에는 한낮 기온이 36.3도까지 치솟을 정도로 기록적인 폭염이 덮쳤다. 해발 1500m에 있는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는데도 타는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대피소를 지나자 피라미드 모양의 구상나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열매와 부드러운 잎. 왜 구상나무가 세계적으로 고급 크리스마스트리로 인정받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한라산 성판악 등산로 주변 구상나무 집단 고사 현장.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구상나무들이 처참하게 쓰러져 있다. 조현우 사진작가
한라산 성판악 등산로 주변 구상나무 집단 고사 현장.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구상나무들이 처참하게 쓰러져 있다. 조현우 사진작가

하지만, 1700m 고지를 넘어 본격적인 구상나무 군락에 도착하자 충격적인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폭탄을 맞은 것처럼 등산로 주변의 구상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로 쓰러져 있었다. 잎은 전부 떨어지고 앙상한 채로 죽음을 눈앞에 둔 나무들도 많았다.

“해발 1700m에서 1800m까지는 구상나무의 80% 이상이 고사한 거로 보입니다. 과거에는 한두 그루 이렇게 죽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넓은 면적이 고사하거나 집단으로 쇠퇴하는 적은 없었죠.”
동행한 김진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연구원이 고사한 구상나무를 보면서 말했다. 그는 20년 넘게 한라산을 오르면서 구상나무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그를 따라 참혹한 구상나무 떼죽음 현장으로 들어갔다. 김 연구원이 뿌리를 드러낸 채로 쓰러진 한 나무를 가리켰다.

한라산 성판악 등산로 주변에 구상나무가 뿌리를 드러낸 채로 쓰러져 있다. 조현우 사진작가
한라산 성판악 등산로 주변에 구상나무가 뿌리를 드러낸 채로 쓰러져 있다. 조현우 사진작가

“구상나무는 뿌리를 깊게 박지 않고 옆으로 뻗어 나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바위인 바닥 위에 뿌리를 뻗다 보니까 집중호우나 강풍에 의해서 넘어가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거죠.”



푸르렀던 숲 10년 만에 하얗게 변해

한라산 구상나무
한라산 구상나무

구상나무(학명 Abies koreana E.H. Wilson)는 1920년에 우리나라의 특산 식물로 보고된 종이다. 올해로 이름을 얻은 지 100년째다. 구상나무는 지리산에서부터 한라산까지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주로 자란다. 기후변화로 인해 서식지가 점차 줄면서 2013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구상나무를 ‘멸종 위기에 처한 종'(Endangered species)으로 지정했다.

2009년 성판악 등산로에서 찍은 구상나무숲 모습. 김진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연구원
2009년 성판악 등산로에서 찍은 구상나무숲 모습. 김진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연구원
2020년 8월 위 사진과 동일한 곳에서 촬영한 구상나무숲의 모습. 조현우
2020년 8월 위 사진과 동일한 곳에서 촬영한 구상나무숲의 모습. 조현우

20년 전만 해도 한라산의 구상나무 숲은 자연적으로 고사한 나무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건강한 모습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겨울철 적설량이 점차 감소하면서 생기를 잃고 죽어가는 나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눈이 일찍 녹아버린 탓에 봄철 구상나무가 광합성을 하는 데에 필요한 수분이 부족했다. 이 결과 생장에 악영향을 받았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제주도의 평균 기온은 15.4도(1961~1970년)에서 16.6도(2009년~2018년)로 50년 새 1.2도가 올랐다. 눈이 내린 날(적설일)은 같은 기간 12일에서 5.9일로 절반이나 줄었다.


1000㎜ 물폭탄에 슈퍼태풍 강타…또 쓰러진 구상나무

한라산 성판악 등산로 주변에 구상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로 쓰러져 있다. 조현우 사진작가
한라산 성판악 등산로 주변에 구상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로 쓰러져 있다. 조현우 사진작가

여기에 점점 강력해지는 태풍과 여름철 집중호우가 약해질 대로 약해진 구상나무를 떼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에 따르면 한라산 주요지역의 구상나무 고사율은 1996년 17.8%에서 2014년 47.6%로 급증했다. 지난 10년 동안(2006~2015년) 축구장 154개 면적(112.3ha)의 구상나무숲이 사라졌다.

올해도 제주 산간에 100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초강력급 태풍이 연이어 제주를 강타했다. 극한 기상현상이 잦아지면서 피해가 한층 커지고 있다. 김 연구원은 “최근 태풍이 지나간 이후에 한라산에 올라가 보니 쇠약했던 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로 쓰러져 있었다”고 전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10~20년 사이에 멸종의 가속 페달을 밟았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한라산이 거대한 고사목의 전시장으로 변하고 있다”며 “한반도에서 기후변화로 죽어가는 첫 생물종으로 구상나무가 기록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2080년 구상나무 살 곳 사라진다

한라산에서 구상나무와 공생하며 살고 있는 희귀식물 애기사철란. 김진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연구원
한라산에서 구상나무와 공생하며 살고 있는 희귀식물 애기사철란. 김진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연구원

이우균 고려대 교수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기후변화에 따른 멸종위기 침엽수종 분포 변화 예측’ 논문에 따르면, 2050년대에는 구상나무가 국내에서 잠재적으로 서식할 수 있는 면적 비율이 1%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2080년대에는 거의 사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실상 ‘멸종의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구상나무의 멸종은 한라산 생태계엔 재앙과도 같다. 김 연구원은 “한라산 고산지역에 사는 애기사철란 등은 구상나무 숲 밑의 이끼에서 공생관계를 이루며 살고 있다”며 “구상나무가 없다면 애기사철란 같은 종들이 소멸해버리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의 고정군 박사는 “구상나무는 기온이 1도 오르면 수직으로 150m 이동하는데, 고지대에 살기 때문에 2~3도만 기온이 더 올라도 더는 올라갈 곳이 없다”며 “구상나무의 체계적인 보전을 위한 추진 전략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천권필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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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위기에 놓인 한라산 구상나무 숲의 모습을 VR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스마트폰으로 QR코드에 접속하면 360도 영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상이 보이지 않으면 주소창에(https://youtu.be/t7rik8DE9pk)를 입력하세요.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 중앙포토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 중앙포토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가 21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딸이 운영하는 식당의 단골이라 법무부 홍보대사로 위촉됐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어이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한 언론은 지난 2015년 추 장관 딸 서모씨의 서울 이태원 식당을 ‘단골집’으로 소개한 줄리안이 올해 5월 법무부 홍보위원으로 위촉됐다며 “소셜미디어에서는 ‘추 장관이 딸의 식당을 단골이라고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연예인을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후 법무부는 줄리안이 법무부 홍보대사가 아닌 사회통합프로그램(KIIP) 멘토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고 해명했다.

이름이 직접 거론된 줄리안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해명에 나섰다. 자신이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때부터 멘토단으로 활동해왔다고 밝히면서다. 줄리안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에서 “어이가 없어서 대응을 해야하나 고민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법무부 홍보대사를 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9년 박상기 당시 장관 때부터 사회통합프로그램 시범 멘토단 10명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며 “저뿐만 아니라 유명 외국 방송인 몇몇과 일반 외국인도 함께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가 21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법무부 홍보대사를 한 사실이 없다"며 "사회통합프로그램 멘토단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 때부터 이미 활동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와 함께 2019년 2월 자신이 멘토단으로 활동한 당시의 모습이 담긴 영상 캡처를 올렸다.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가 21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법무부 홍보대사를 한 사실이 없다”며 “사회통합프로그램 멘토단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 때부터 이미 활동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와 함께 2019년 2월 자신이 멘토단으로 활동한 당시의 모습이 담긴 영상 캡처를 올렸다.

이어 “멘토단 시범이 잘 돼서 추 장관 (취임) 전부터 공식 멘토단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진행이 늦어져 추 장관 (취임 이후) 출범하게 됐다”면서 자신은 멘토단으로 활동한 35명 중 한 명일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그 35명과 함께 위촉되면서 추 장관을 처음 만났고, 그날 한 번 밖에 뵌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이 멘토단은 한국에서 영주권을 받기 위한 필수 코스인 사회통합프로그램 교육을 듣는 학생들에게 강의한다”며 “이 과정을 이수한 사람을 대상으로 공개모집을 해 멘토단에 선정된다. 나도 이 프로그램을 이수했다”고 말했다. 멘토로 선정되는 배경에 어떤 특혜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줄리안은 자신이 추 장관 딸 식당의 ‘단골’이라고 소개된 데 대해서도 “집 밑에 미트볼 가게가 생겨서 너무 반갑고 먹어보니까 맛있어서 자주 갔다”며 “만나도 안부만 물을 뿐 개인적인 연락처도 없다. 가게 사장님인 것 외에는 아는 게 없었고, (추 장관 딸이라는 것도) 오늘 아침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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